◈일 자 : 2009. 11. 15(일)
◈어 디 : 영월 법흥사 / 미륵사 / 정선 정암사
※ 법흥사 자세히 보기 http://www.bubheungsa.or.kr/
※ 정암사 내력 자세히 보기 맨아래로 이동하면
▼법흥사 적멸보궁
▼적멸보궁앞에서 주지스님과 기념촬영
▼적멸보궁 뒤에는 자장스님이 불사리를 봉안하고 수도하던 곳이라 전해지는 토굴과 사리탑이 있다.
▼토굴 옆에는 자장이 당나라에서 불사리를 모셔올 때 사리를 넣고 사자 등에 싣고 왔다는 석함이
남아있다
▼요선정과 미륵사
▼요선정은 무릉리 거주자들이 1915년도에 지은 정자.
▼무릉리 마애여래좌상은 고려시대 조각한 것으로 현재 유형문화재로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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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주천강의 백석탄
▼석탑은 파손이 심해서 1972년 해체·복원되었다.
▼이름이 왜? 수마노탑인가?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본국으로 귀국할 때
(서기 643년) 서해용왕이 자장율사의 불도에 감화되어
용궁(水)에 들어가서 용왕으로부터 마노석을 받아 쌓아 올린 탑이라 하여 수마노탑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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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정암사로 표기되어 있으나 실제는 함백산이며 문헌에는 태백산으로 잘못 오인하여 기록
한 것이 아닐까?
▼적멸보궁(2008년 겨울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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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암사의 내력 >
정암사 수마노탑은 강원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 산214 번지 정암사 내에 있으며,1964년 9월 4일 보물 제410호로 지정되었다.
이 탑의 높이는 9m이고,탑 전체가 길이 30~40cm, 두께 5~7cm 크기의 회색 마노석으로 정교하게 쌓아져 언뜻 보면 벽돌을 쌓아 올린 듯하다.
정암사 적멸보궁 뒤의 산비탈에 세워진 7층의 모전석탑이다. 모전석탑이란 전탑을 모방한 탑으로, 돌을 벽돌 모양으로 깎아 쌓아올린 탑을 말한다.
화강암으로 6단의 기단을 쌓고 탑신부를 받치기 위해 2단의 받침을 두었다. 탑신은 회녹색을 띤 석회암으로 쌓았는데, 표면을 정교하게 잘 정돈하여 벽돌을 사용한 것처럼 보인다. 1층 옥신은 밑면이 178cm로 15단을 쌓아 높이 103cm 방형을 만들었고, 1층 옥신 남쪽면 중앙에는 감실(불상을 모시는 방)을 설치하였는데 화강석으로 외경 폭 65cm, 높이 70.5cm, 외경 폭 41cm, 높이 59cm의 틀을 짜서 판석으로 문짝을 세워 2짝의 문임을 나타내고 중심에 쇠 문고리를 부착하였다.지붕돌은 추녀 너비가 짧고 추녀끝에서 살짝 들려있으며, 각층 전각 끝에는 풍경이 달려 있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수는 1층이 7단이고, 1단씩 줄어들어 7층은 1단이며, 지붕돌 윗면도 1층이 9단, 1단씩 줄어들어 7층은 3단으로 되어있다. 꼭대기의 머리장식으로는 청동으로 만든 장식을 올렸다.
돌벽돌의 일반적인 크기로 보아 그리 거대한 편은 아니지만 형태가 세련되고 수법 또한 정교한 탑이다. 탑 앞에 돌이 하나 있는데, 여기에 새겨진 연꽃무늬, 안상 등은 모두 고려시대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이 석탑은 파손이 심해서 1972년 해체·복원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탑을 세운 이유를 담은 탑지석 5개와 금·은·동으로 만들어진 사리구가 발견되어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보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의 모습이 언제부터 전해진 것인지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어서 확실하지 않지만, 정암사에 있는 여러 유물과 비교해 볼 때 고려시대에 처음 만들어졌을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이 탑은 신라 사적기에 선덕여왕 12년(서기 643년) 자장율사께서 정암사를 창건하고 7년 후에 수마노탑을 건립 하였다고 전하나 고려시대의 건립으로 추정된다.
재료는 모전석, 층수는 7층, 기단 6단, 탑신은 감실 문비음각으로 상륜부는 청동제로 되었다.
사적에 의하면 이 태백산(현 함백산) 삼갈반지에 삼봉이 있으니 동은 천의봉, 남은 은탑봉, 북은 금탑봉이며 그 가운데 3탑이 있으니 첫째 금탑, 둘째 은탑, 셋째 마노탑 인데 금·은 두 탑은 숨어서 나타나지 않고 마노탑만 나타나서 전한다고 한다.
이 탑을 세우며 탑의 기단부에 사리, 불지절, 불장주, 염주 패엽경을 봉안하였다 하며, 이 탑은 자장율사가 당나라 오대산에 들어가 소도하고 본국으로 귀국할 때(서기 643년) 서해용왕이 자장율사의 불도에 감화되어 용궁에 들어가서 용왕으로부터 수마노석을 받아 쌓아 올린 탑이라 한다.
이 탑을 세운 뒤 조선 숙종 39년에 취봉당자인과 일종스님이 주동하고 천밀스님이 화주하여 그해 5월에 수마노탑을 중수하였는데 8월 15일 낙뢰로 인해 탑이 파괴되었으므로 6년 후에 천밀스님이 다시 발원하고 시주를 걷어 5층 탑으로 축조하였다.
그 후 영조 46년에 취암성우화상이 발원하여 은휴당시연과 단일당홍관이 협력하여 탑을 중수하고 찰우대를 조성하였고, 익년 5월에 낙성하였는데 원탑이 7층 동유장엄이 5층 풍경이 32구였다. 이 풍경은 바람만 슬쩍 불어도 맑은 소리가 공중에 가득 찼다.
그 뒤 백여년이 지난 광무황제 9년에 얼암서보화상이 탑이 기우는 것을 보고 발원하고 백일기도를 하였더니 탑 우측 부근에서 한 무더기의 마노 보석을 발견 하였다고 한다. 그때 봉은사에서 화엄경판을 조각하고 해인사 대장경을 인출한 남호영기 대사와 협력하여 동년(서기 1872년) 5월에 준공했다.
천밀스님이 이 탑을 중수할 때 금·은 식기에 사리를 담아 봉안 하였던 것이 탑과 함께 파괴 되었으므로 그 속에서 염주 81교와 금주 5교 등을 걷어 1층 탑신에 안장하고 7층 탑으로 축조하였는데, 그 뒤에 49보령이 하늘에 솟았는 듯 했다고 한다.
그후 100여년이 지나 탑이 도괴 직전에 놓여 1972. 11. 8. 당시 문화공보부 문화재 관리국에서 국비 340만원을 들여 완전 해체 복원하였으나 광산개발이 본격화 되면서 지역의 특성상 지반이 침하되고 탑의 균열이 심화. '96년 총사업비 1억 9천 6백만원을 들여 기단석 이상 전면을 해체 보수 및 탑 보호시설·진입로를 정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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