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남산♥

경주 장산 토우총

불멸의 이신신 2011. 12. 7. 08:03

- 도로에서 바라본 장산 토우총

도산(仙桃山)은 서악(西岳)이라 하여 신라 사람들이 신성시하였던 곳입니다. 이곳에는 태종무열왕릉과 서악동 고분군 등 수많은 고분이 있습니다. 특히 선도산 동쪽 자락은 배산임수(背山臨水)라는 풍수지리설을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망자(亡者)의 안식처로 좋아 보입니다.

선도산의 한 자락이 남동쪽으로 꼬리를 튼 야트막한 구릉에는 경주 지역에서 가장 많은 고분이 모여 있습니다. 이 산을 장뫼(障山)라고 부르고, 이 고분군을 장산 고분군이라고 합니다. 이곳에 있는 고분들은 모두 석실분인데, 이 고분들의 주인은 법흥왕 이후에 신라를 이끌었던
신라 왕족이나 귀족들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이곳은 신라 왕족이나 귀족들의 북망산천(北邙山川)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장산 고분군의 무덤들 대부분은 도굴되었으며,
특히 소형 고분의 훼손이 심합니다. 인생무상(人生無常)이란 말이 있듯이, 이곳 고분들도 봉토가 무너져 내렸고, 봉토 위에는 나무가 자랐습니다.
- 경주 장산 토우총


장산 고분군 남쪽 끝자락의 여러 고분 가운데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내부를 공개하고 있는 유일한 고분으로 장산 토우총이 있습니다. 이 고분은 통일신라시대의 석실분으로, 봉분의 지름은 10m, 높이는 7m입니다.

신라시대의 고분은 조기(기원 전후~350년)의 토광묘 시기, 전기(350년~6세기 초)의 적석 목곽분 시기, 후기(6세기 이후)의 횡혈식 석실분으로 나눕니다. 장산 고분군은 후기의 횡혈식 석실분에 해당합니다. 현재 경주 지역에서 내부를 개방하는 석실분으로는 장산 토우총 외에도 구정동 방형분이 있습니다. 내부를 개방하는 또 하나의 고분인 천마총은 석실분이 아니라 적석 목곽분입니다.


석실분은 3명에서 많게는 10명까지 묻을 수 있으므로 자식이 죽으면 뼈를 한쪽으로 모으고 또 묻을 수 있는 경제적인 무덤입니다. 위치 또한 산지에 있기 때문에 농토를 잠식하지도 않았고, 부장품도 최소한으로 줄여 박장(薄葬)을 하였습니다.
- 장산 토우총 입구


장산 토우총 석실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철문이 굳게 잠겨 있습니다. 그래서 직접 안으로 들어가서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철문 사이로 들여다보면 석실로 통하는 돌문은 볼 수 있습니다.
- 장산 토우총 돌문


석실 내로 들어가는 돌문의 모습입니다. 이 돌문을 열고 들어가면 시신을 안치한 석실이 있습니다.
- 석실 벽면도와
평면도

비록 석실 내부로 들어가 볼 수는 없었지만, 석실 벽면도와 평면도를 통해 그 모습을 짐작할 수는 있습니다.

시체를 놓았던 시상대는 동서로 놓여 있고, 출입문은 남쪽으로 나 있습니다. 시상대는 두 구의 시신이 누울 수 있는 것과 그보다 한 단 낮게 또 한 구의 시신이 누울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동쪽에는 머리를 고정하는 돌베개인 두침(頭枕)이 있고, 서쪽에는 발을 고정하는 발 받침인 족좌(足座)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장산 토우총은 경주박물관 측에 의해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는데, 이미 도굴당한 뒤라 그런지 출토된 유물은 사발 등의 토기 종류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이 고분에 토우총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은 발굴조사 당시에 널방(玄室)의 바닥 네 모서리에서 깨어진 것이지만 토우(土偶)가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